박필수 전 상공부장관(42회 건축)

 

 

경제기획원의 전신인 부흥부에서 관리생활을 시작하여 상공부에서 국제협력차관보, 상역차관보, 상공부장관을 역임한 수출 100억불 시대의 주역으로 퇴임 후에도 한강포럼을 창설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상공부 전직관료들과 설악산 관광을 위해 이동 중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로 사망하였는데 당시 박 전장관은 5, 6 시절 안기부 요원의 무기거래 불법 리베이트를 인지했다는 이유와 DJ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여 안기부 요원들이 이를 빌미로 저질렀다는 지인들의 주장이 있으나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

한국외국어대 영어, 미 피츠버그대 대학원 졸,

한양대 경제학 박사
상공부장관
전매청장
 국제협력차관보, 상역차관보

 한국외국어대 총장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한국소비자보호원장

 한국외대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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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태 전 우리금융 중국법인장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아비바생명 신임 사장으로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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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장기범 (36회 기계)

 해방 이후 한국방송사에서 매우 비중이 높았던 방송인물로 인천(仁泉) 장기범(張基範) 선생을 꼽는데 그는 1949년 국내유일 방송으로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에 입사하여 아나운서, 라디오와 TV제작, 보도책임자를 역임하였는데 특히 재치문답, 스무고개 등의 라디오 방송 사회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50~60년대는 물론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70년 대 초까지 라디오방송 아나운서의 인기는 매우 높았는데 장기범을 비롯해 후배 아나운서인 이광재, 임택근 등이 그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좀 늦은 나이에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의 박종설 여사와 결혼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사진 좌)

 

 중앙방송(KBS)이 공보부 소속으로 정부의 부서로 인식되던 시대에 가장 비중 있는 방송인이 었던 그는 독재권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옮지 않은 일에 동조하거나 몸을 굽히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그는 정부고위직 등 높은 자리 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한 일들로 인해 오히려 인사상의 불이익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방송인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지키고 바른 삶을 살다간 높은 인격과 덕망을 갖춘 인물로 후배 방송인들에게 각인되어 존경 받고 있다. 

   

이러한 장기범 선생의 뜻을 기리고져 한국아나운서협회에서 장기범 아나운서상을 제정하여 연말 방송대상에서 그해 가장 좋은 활동을 보여준 아나운서에게 시상하고 있다.


한국방송인물사를 연구, 집필하고 있는 후배 방송인인 김성호 박사가 첫 번째 인물로 장기범선생의 방송인생을 다룬 ≪장기범 평전, 방송이 곧 사람이다≫가 2007년 출판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 1장 출생과 성장에 장기범 선생의 유년기와 모교 입학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리고 방송인 이장춘 선생이 KBS의 협조를 받아 운영하는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 한국방송사에 대한 모든 자료가 있는데 장기범 선생 관련 글 이 많이 올려져 있다.

 

인천 무의도 출생

경성공립공업학교 졸

고려대 정치과 졸

제1회 방송문화상 보도부문 수상

미국의 소리(VOA)

중앙방송 보도부장  

KBS 라디오국장 (현 보도본부장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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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도에 발행된 신문을 보니 1950년 봄 실업교육 진흥을 위해  전국에서 서울공업(해방 이후~ 50년대 모교인 서울공립공업중학교의 약칭)을 비롯한  7개교를 초급대학으로 개편하려는 문교부의 계획이 6.25동란 발발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

 

당시는 중고교 과정이 합쳐진 6년제 중학교 학제로 초급대학 응시자격을 중학4학년 수료예정자로 한 것이 특이한데 이러한 계획은 경제발전을 위해 중간레벨의 실업인력 양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기 학교 중 서울공고, 경북여고, 목포상고(인문고로 전환)는 현재도 고교로 존속되고 있고, 서울농고는 1956년 서울농업대학(현 서울시립대)으로, 나머지 학교는 1963년 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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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63회 노수홍 연세대 교수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글로벌탑 환경기술개발사업인에코스마트 상수도사업단의 사업단장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노수홍 교수는 도시하천 복원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소설가 박경리(朴景利)씨의 제의에 따라 1~2년간 연구해 왔던 것으로 처음에는 서울시에서 타당성 없음으로 결론 났으나 나중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이 프로젝트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어 청계천을 복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현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노수홍 연세대 교수 에코스마트상수도사업단장 선정

기사출처:경향신문 *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노수홍 연세대 교수 에코스마트상수도사업단장 선정


기사출처:경향신문 *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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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융기 연세대 특훈 교수(생화학ㆍ융합오믹스)는 최근 세계인간단백질기구(HUPO) 이사회에서 국제인간단백질 지도사업의 공동위원장으로 선임됐다. 특히 염색체기반단백질지도사업컨소시엄의 책임을 맡게 됐다.

 현재 이 국제 컨소시엄에는 한국 미국 캐나다 스웨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인간단백질 공동위원장에 백융기 씨

기사출처:매일경제신문 *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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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치하에서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용관 선생(6회)

 

 2017년 광복 72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언급하며 넋을 기렸다.

문 대통령은 15일 오전 경축사에서 "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이라며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독립투사는 의사 이태준 선생과 기자 장덕준 선생,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자 김용관 선생,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이다.

[출처: 중앙일보] 대통령이 부른 독립운동가 5...의사·기자·어머니·과학자·감독

구한말 박찬익(3, 전 상해임시정부 법무부장) 선생이 한국최초의 공업연구모임인 공업연구회를 발족, 2년 여 활동하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선에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활동이 중단되었으나, 이후  일제강점기 선각자인 김용관(金容瓘) 선생의 주도로  과학기술의 대중화운동을 위해 192410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진흥단체인 조선발명협회가 창립되고 이후 과학데이 행사, 과학지식보급회 등을 조직하여 조선의 과학기술 대중화를 위해 헌신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38년 과학데이 행사 후 일제에 체포되어 4년 여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 출감 후 일제의 눈을 피해 만주로 피신, 해방 후 귀국하였으나, 과학지식대중화 운동에 헌신하느라 가장으로서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그는 활동력을 상실하고 1967년 쓸쓸히 사망하였다.

매년 421일 과학의 날도 1934 419일부터 시작된 과학데이 행사를 유래로 지정되었다.

▲ 서울 생

   관립공업전습소 도기과 졸(최초의 근대적 실업교육기관, 관립농상공학교의 후신)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1회 졸(공업전습소 특별과를 기반으로 설립된 서울공대의 전신)

   일본 동경고등공업학교

과학대중화운동의 기수 김용관

기사출처:네이버 *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조선발명학회 발행 과학조선

기사출처:한국잡지백년2 *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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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간 이어져온 건설경기의 침체로 부실 업체는 물론 건실한 건설회사들의 도산과 법정관리 신청이 줄을 잇는 가운데 최근 모교 27회 故 肅齋(숙재) 조정구 회장이 창업한 삼부토건도 헌인지구 PF문제로 발목이 잡혀 법정관리를 신청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삼부는 국내 건설업면허 제1호의 전통 있는 건설회사로 50~60년대에는 대동공업, 조흥토건, 극동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과 함께 6대 건설업체 중 5인방으로 불리며 각종 대형공사를 독점하였으며, 60,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정상급의 건설업체였으나 지연, 혈연, 학연 등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기업경영으로 현대, 대림 등과 같은 대기업 그룹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현재는 도급순위 30위권으로 사세가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서울 강남 라마다르네상스 서울호텔, 경주콩코드호텔 등 알짜 자산이 많아 건설업체 중에는 자산가치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삼부토건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매우 보수적인 회사로서 토목, 건축이 주력인데, 리스크가 큰 고가의 호화주택사업에 뛰어 든 것이 회근이 되었다. 


그러나 삼부토건의 자산이 많고, 헌인 PF외에는 주택사업의 비중이 낮아 미분양 리스크가 거의 없어 조만간 법정관리 신청은 철회되고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故 조정구 회장은 일제시대인 1938년도에 신축한 현 대방동 교사의 공사를 감독하였으며, 6.25 한국전쟁 중인 1.4후퇴 후 소실된 본교 본관의 복구공사도 삼부토건에서 맡아 수행하였는데 여러모로 모교와 인연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故 조정구 회장은 50~70년대 건설업계에서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과 함께  추진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았고, 건설업계에서 신망이 높아 대한건설협회회장을 11년 간 역임,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바 있다. 또한 정계에도 투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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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60회)

from 동문소식 2011. 5. 2. 12:27

전 봉은사주지로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명진스님의 중앙일보 인터뷰기사가 있어 올립니다.

그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기사화되었으므로 소개하며, 속세를 떠난 승려의 신분이므로 실명은 밝히

지 않는 것이 예의라 봅니다.

"강남 좌파 스님이 사춘기? "

기사출처:중앙일보*기사내용은 링크사이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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