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장기범 (36회 기계) |
해방 이후 한국방송사에서 매우 비중이 높았던 방송인물로 인천(仁泉) 장기범(張基範) 선생을 꼽는데 그는 1949년 국내유일 방송으로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에 입사하여 아나운서, 라디오와 TV제작, 보도책임자를 역임하였는데 특히 재치문답, 스무고개 등의 라디오 방송 사회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50~60년대는 물론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70년 대 초까지 라디오방송 아나운서의 인기는 매우 높았는데 장기범을 비롯해 후배 아나운서인 이광재, 임택근 등이 그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좀 늦은 나이에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의 박종설 여사와 결혼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사진 좌)
중앙방송(KBS)이 공보부 소속으로 정부의 부서로 인식되던 시대에 가장 비중 있는 방송인이 었던 그는 독재권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옮지 않은 일에 동조하거나 몸을 굽히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그는 정부고위직 등 높은 자리 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한 일들로 인해 오히려 인사상의 불이익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방송인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지키고 바른 삶을 살다간 높은 인격과 덕망을 갖춘 인물로 후배 방송인들에게 각인되어 존경 받고 있다.
이러한 장기범 선생의 뜻을 기리고져 한국아나운서협회에서 장기범 아나운서상을 제정하여 연말 방송대상에서 그해 가장 좋은 활동을 보여준 아나운서에게 시상하고 있다.
한국방송인물사를 연구, 집필하고 있는 후배 방송인인 김성호 박사가 첫 번째 인물로 장기범선생의 방송인생을 다룬 ≪장기범 평전, 방송이 곧 사람이다≫가 2007년 출판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 1장 출생과 성장에 장기범 선생의 유년기와 모교 입학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리고 방송인 이장춘 선생이 KBS의 협조를 받아 운영하는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 한국방송사에 대한 모든 자료가 있는데 장기범 선생 관련 글 이 많이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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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무의도 출생
경성공립공업학교 졸
고려대 정치과 졸
제1회 방송문화상 보도부문 수상
미국의 소리(VOA)
중앙방송 보도부장
KBS 라디오국장 (현 보도본부장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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