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23일자 중앙일보가

탐사기획으로 분석한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대해부" 특집의 고교별 파워 엘리트 배출순위에서

 

상위권 실업고 중 공업고 보다는 학력차별이 상대적으로 적고, 70년대 경제발전에 따른 금융산업의 발전으로 여러모로 유리한 상업고의 순위가 전반적으로 높고, 서울보다는 정치적인 혜택을 많이 받는 영남권 상업고들이 앞서 있다.

공업고 중에는 모교인 서울공고가 단연 1위이나 인문고로 치면 15~20위권 전후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60년대생 이후 실업고는 순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췼다.

완벽한 조사는 아니겠지만 50년 이전 생에서 경기상고와 선린상고가 덕수상고에 비해 너무 순위가 낮게 나왔다.

  가져온 곳 : 중앙일보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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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도에 발행된 신문을 보니 1950년 봄 실업교육 진흥을 위해  전국에서 서울공업(해방 이후~ 50년대 모교인 서울공립공업중학교의 약칭)을 비롯한  7개교를 초급대학으로 개편하려는 문교부의 계획이 6.25동란 발발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

 

당시는 중고교 과정이 합쳐진 6년제 중학교 학제로 초급대학 응시자격을 중학4학년 수료예정자로 한 것이 특이한데 이러한 계획은 경제발전을 위해 중간레벨의 실업인력 양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기 학교 중 서울공고, 경북여고, 목포상고(인문고로 전환)는 현재도 고교로 존속되고 있고, 서울농고는 1956년 서울농업대학(현 서울시립대)으로, 나머지 학교는 1963년 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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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앞 서쪽 운동장에 화단 앞에 있는
『개교백주년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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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교 운동장 동쪽 화단에 세워져 있는

『한국실업교육발상지기념탑』

 

1899년 설립된 한국최초의 실업교육기관인 '관립상공학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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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

전공

성  명

 

초대

 3

염직

박  찬  익

 상해임시정부 법무부장, 초대 공업연구회장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 교장이 교우회장을 겸임

2

6

염직

한  진  범

 

3

27 

건축

조  정  구

 전 국회의원, 전 삼부토건(주) 회장

4

28

건축

변  형  권

 전 평화건설(현 롯데건설) 회장

5

32

방직

민  유  동

 전 총무처 차관

6

33

건축

조  창  구

 전 삼부토건(주) 회장

7

37

방직

이  유  신

 전 삼화주택(주) 회장

8

37

전기

최  종  성

 전 건설부 차관

9

35

토목

한  상  억

 전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회장

10

47 

기계

정  진  원

 원풍실업(주) 회장

11

48 

전기

설  진  근

 전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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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1899년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국내 최초의 실업교육기관으로서 工科 위주의 4년제 관립상공학교로 설립, 1904년 관립농상공학교로 개편되었으나 ,예산부족과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는 등의 혼란으로 명맥만을 유지하다, 1906년 공과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최고공업교육기관인 관립공업전습소로 개편되어 남고,  농과는 수원고등농림학교(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상과는 선린상업학교( 선린인터넥고)로 분리되어 나갔다.

 

1914년 관립공업전습소 특별과가 설립되어 1916년 설립된 경성공업전문학교(이후 경성고등공업학교, 다시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해방 후 서울공대로 통합됨) 1회 입학생이 되고,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신설 되며 이에 부속된다,

 

이후 1922년 관립경성공업학교로 개편, 1939년 동숭동에서 대방동으로 이전, 경성공립공업학교, 서울공립공업중학교, 서울공업고등학교, 서울기계공업고등학교, 다시 서울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이 환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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