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건축의 학문적 기틀을 세운 서울대 명예교수 윤장섭 박사(33회 건축)

::: 끊임없는 자기 계발로 한국 건축의 학문적 기틀을 세운 윤장섭 교수 :::

                                                                   이언구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  

 

흔히들 건축은 예술과 과학이 통합된 학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건축이 도시를 아름답게(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꾸미고, 인간 생활에 문화적 활력소를 제공하며, 독창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건축은 분명히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건축이 우리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하면서도 쾌적한 삶의 터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적 기술이 접목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통합은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이해를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점에서 건축이라는 학문이야말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성격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학문으로서 교육되고 연구되어 온 역사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매우 일천하다. 세계적으로도 19세기 중엽까지 건축은 단지 도제식(apprenticeship)의 일방적 기술 전수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고,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대학교육의 체제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제시대인 1916년 총독부에서 설립한 경성공업전문학교에서 처음으로 학제화된 건축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기술 위주의 전문교육에 치중하였으므로, 해방후 1946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내에 신설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가 대학 건축교육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소우(篠愚) 윤장섭(尹張燮) 교수는 1946년 서울대 건축학과의 첫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1950년에 졸업(8명 졸업)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건축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또한 졸업 후 바로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전쟁으로 이를 계속하지 못하다가 1958년 미국 MIT 건축대학원에 유학하여 1959년 석사 학위를 받았으니,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축 분야에서 외국 유학을 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바로 한양대에서 시간강사를 하였고, 또 군복무 후 1955년에 한양대 교수, 1956년에 서울대 교수가 되었으니 우리나라 건축교육에 있어 선구자임이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윤장섭 교수는 이와 같이 연대기적인 선구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흔 다섯 되던 1999년에 『중국의 건축』이라는 중국 건축 문화의 발자취를 정리한 저서를 출간하더니, 이듬해에는 다시 『일본의 건축』이라는 역저를 출간하고 있으니 말이다. 희수를 넘긴 지금도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과 학문 연구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는 윤장섭 교수가 앞으로 어떻게 후학들을 놀라게 하고 채찍질할지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다. . 학문적 토대 소우 윤장섭 교수는 192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41 5년제 관립 경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주택영단(지금의 주택공사)에서 2년간 건축기사로 근무한 후 다시 1944년에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에 입학하게 된다. 건축을 공부하게 된 동기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주변에서 건강 유지를 위해 건축을 하라는 권유 때문이었다니, 팔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규칙적으로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건강의 비결이 정말 ‘건축’에서 나온 모양이다. 공업전문학교 재학 중 줄곧 수석을 차지했던 윤장섭 교수는 해방 후 설립된 1946년 서울대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으니 이때까지 건축교육만 11년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그의 건축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이해는 이때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나 6·25의 발발로 공군에 입대하여 시설 장교로서 4년 반을 근무한 후 1955년 공군 소령으로 제대한 그는 바로 한양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였고 1년 뒤인 1956 11월 서울대학교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군 생활 내내 미국 유학을 꿈꾸던 윤장섭 교수는 1958 USOM 미국 파견 교육 프로그램의 주선으로 매사츄세츠 공대(MIT) 건축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때 MIT에서의 대학원 과정은 그의 건축교육과 연구 활동에 출발점이자 구심점이 되었다. Eduardo Catalino, Gyorgy Kepes, Pietro Bellushi, Lawrence Anderson 등 유명 교수와의 만남에서 얻은 교훈과 특히 당대 제일의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Walter Gropius와의 만남은 그에게 일생동안 큰 영향을 미쳤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일생에 걸쳐 가장 큰 학문적 소재의 대상이 된 한국 건축 문화에 대한 관심이 바로 MIT 유학 시절에 싹텄다는 사실이다. 석사과정을 통해 보고 배운 세계 각국의 건축 문화는 그 사회의 역사와 가치관과 지역 특성 및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계승 발전되었다는 인식이 그로 하여금 그동안 무관심했던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 것이다. 윤장섭 교수는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의 교육뿐만 아니라 건축 연구 활동과 함께 설계 실무에도 참여하게 된다. 1960 USOM ICA주택설계에 참여하였고, 1965년에는 건설부 주거 및 도시주택연구실(HURPI)설립을 주도하였다. 1966년에는 국회의사당 기본 계획을 주관하여 작성하였고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계획 수립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1960년부터 1974년까지 직접 설계 사무실을 개설하여 운영하면서 다양한 건축 설계의 실무 경험을 축적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응용학문으로서의 건축의 특성상 건축과 교수들은 건축 이론과 실무 경험이 겸비되는 것이 필수적이고 외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중반부터 이를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후 윤장섭 교수는 1974년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신행정수도기획단 분과위원장, 중앙도시계획위원, 대만 성공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한 후 1980년 대한건축학회 회장, 1981년에는 학술원 회원에 선임된다. 1990년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열정적인 연구 활동과 저술 활동을 통하여 한국출판문화상, 서울시 문화상, 과학기술도서상, 옥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등의 상훈을 받기도 한 그는 현재에도 서울대 명예교수, 호서학원 감사, 문화재위원, 동우건축 고문 등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활발한 연구자문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학문적 발자취 윤장섭 교수는 교육자이자 건축가면서 동시에 철학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 계획과 설계를 가르치면서 ‘건축음향’이라는 환경기술적 전공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그의 일관된 학문적 추구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자연과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축문화의 계승발전이었다. 그는 1973년에 10여 년 간 수집한 자료와 연구 내용을 참고로 『한국건축사』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그때까지 주로 일본인들의 자료에 의존하던 한국 건축의 역사를 주체성과 문화적 연계성에 입각하여 체계화시킨 최초의 전문 서적이다. 이 책은 출판된 지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도 대학 교재 및 참고도서로 가장 애용되고 있으며, 그는 이 책으로 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는 연이어 자신의 연구 논문을 정리한 『한국건축사연구』, 『한국의 건축』, 『건축 공간과 노자사상』, 『한국건축사론』 등의 저술을 통하여 한국 전통 건축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는 작업을 지속하였다. 그의 한국 건축에 대한 이론적 체계 구축은 서양 건축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연구활동과 병행하여 서양 건축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시대적 사회 문화의 이해로 설명하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서양건축사』, 『서양근대건축사』, 『서양현대건축』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으며, 이중에서 1987년 출판된 『서양근대건축사』는 그가 학술원상을 받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는 1978년이래 매년 봄가을로 학생들을 인솔하여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통 건축 답사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이즈음에도 연구실 제자들로 구성된 소우회 회원들과 함께 국내외의 건축 답사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연구물과 저서에 포함된 건축 자료는 대부분 그가 실제로 그렸거나 측정한 자료와 직접 찍은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의 사진 실력은 전문가의 수준에 비견할 만 하다. ‘한국 건축’이 윤장섭 교수의 연구자로서의 관심의 대상이라면 ‘건축계획방법론’은 그의 건축가로서의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 유학 시절에 인상깊게 느꼈던 그들의 건축설계에 대한 합리적 접근방법을 서울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그는 『건축계획연구』, 『건축계획방법론』, 『디자이너의 사고방식』과 같은 저서를 출간하게 된다. 한국 건축과 건축계획방법론은 일견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그가 『소우 수필집』에서 기술한 다음의 글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 건축의 발전방향은 우리의 문화적 유산 속에 깊숙히 뿌리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현대적인 건축 표현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건축디자인의 원리에 정통해야 한다. 다음에 우리 문화유산의 장점과 단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며, 좋은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계승해 나가는 방안을 계속 추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는 현대적인 건축 과학 및 기술과 재료들에 관하여 연구하며 그 활용 방법을 통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모든 요소들을 통합화하는 프로세스를 거쳐 우리들의 특유한 현대적인 건축을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윤장섭 교수의 학문 세계에서 한가지 특기할 점은 그가 건축환경의 기술적 분야인 ‘건축음향’의 선구자라는 점이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 건축’이나 혹은 ‘건축계획’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건축음향’을 20년 이상 강의하였고 『건축음향계획론』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건축음향 분야의 최초의 전문서적일 뿐만 아니라 본인 자신도 이 책이 음향 분야에서 가장 내용이 충실한 책으로 자부하고 있다. 왜 그가 건축음향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설명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과거 MIT시절에 연구 과제로 파리의 그랜드오페라 하우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건축음향에 매료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간 그는 많은 건축음향에 대한 자문과 함께 석·박사 학생들의 연구 주제로 건축음향을 즐거이 택하곤 했다. . 맺는 말 윤장섭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일제시대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터이기에 그의 일상에는 신앙적 내음이 배어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신앙적 배경은 그의 건축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건축의 목적이나 건축가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자주 성경을 인용하곤 한다. 예수가 복음을 전할 때 종종 집 짓는 일에 비유한 성경 구절은 그가 논설이나 에세이에 즐겨 쓰는 말들이다. “집과 성전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서, 집을 짓는 것은 하느님의 범례에 따라 혼돈 속에 정연하게 질서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종교적 해석에 따라 그는 항상 질서정연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을 추구해 왔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겸손하고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온유한 사람이다. 후배나 제자들에게도 늘 존대하면서 조용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고전에서 보는 군자의 모습이다. 윤장섭 교수에게는 그가 ‘한국건축사’를 전공했다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복과 전통차가 꼭 어울린다. 설날 같은 때 제자들이 세배라도 가면 항상 한복으로 차려입고 조용히 차를 격조 있게 대접하는 그를 볼 때 우아한 자태의 전통 한옥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아마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 가져온 곳 : 대학교육 제 114 | 20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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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1 7일 서울 출생, 본관은 남원(南原), 아호는 소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

미국 MIT 건축대학원 건축학과 졸

공학박사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 상임위원

대학건축학회 회장, 명예회장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및 제1분과위원장

()종합건축사사무소 동우건축 고문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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